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.10 만세 운동 (문단 편집) === 세 갈래의 독립운동 준비 === [[3.1 운동]]과 같은 만세시위를 다시 한 번 전개하고자 한 [[천도교]]와 [[조선공산당]]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. 권오설을 중심으로 운동지도부로서 '6.10 투쟁특별위원회'가 설치되었고 시위의 전국적인 확산을 위해 [[순종(대한제국)|순종 황제]]의 장례식에 서울에서는 학생을 중심으로, 지방에서는 장례식에 참석한 대중들을 결집해서 항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했다. 이들은 구체적으로 세 갈래로 나뉘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. 먼저 첫 번째로 [[권오설]]을 중심으로 한 노총 및 인쇄 조합원들의 만세 운동 계획이다. 원래 5월 1일에 하기로 했다가 순종 황제가 승하하면서 사태가 급변하자 장례일인 6월 10일로 변경하고 5만 매의 격문을 인쇄하여 천주교당에 숨기며 때를 기다렸다. 그런데 이 무렵 중국의 돈을 위조한 사건이 일어나 일본 경찰이 인근 인쇄소들을 샅샅이 수색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이 계획이 발각되었다. 권오설을 포함한 17명의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어 계획은 실패했다. 다행히 나머지 두 갈래의 운동은 들키지 않고 활발히 준비할 수 있었다. 먼저 사직동계[* 사직단이 있는 것에서 유래한 지역.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[[종로구]]의 필운동, 사직동, 내수동, 내자동의 일부다.]의 중앙고보(現 [[중앙고등학교]])의 이선호, 유면희, 연희전문학교(現 [[연세대학교]])의 이병립, 박하균, 경성제국대학의 이천진과 YMCA의 박두종 등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했다. 이들은 6월 8, 9일에 걸쳐 [[태극기]]를 만들고 이병립이 격문을 작성하여[* 내용은 대충 원수를 몰아내자는 짧은 격문이다.] 1만 매의 격문과 6천 장의 전단을 준비했다. 마지막 한 갈래는 통인동계인 중앙고보(現 중앙고등학교)의 이동환, 박용규와 중동학교(現 중동고등학교)의 김재문, 곽대형, 황정환 5명이 중심이 되어 통인동 71번지에 위치한 김재문의 집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. 계획 도중 본정[* 지금의 충무로.]에 폭탄을 던져 총독부를 파괴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만세운동으로 세계에 이 일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보류하고 만세운동을 계획했다. 5월 29일에 이들은 “조선민중아!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의 일본이다. 2천만 동포야!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! 만세, 만세, 조선독립만세!”라는 그 유명한 격문을 작성하고 5월 29일부터 5월 31일 사이에 김재문의 집에서 빌린 등사기와 김재문과 이동환이 구매한 재료를 이용하여 위 격문 5천 매를 등사하여 각 1천 매씩 나눠 가졌다. 한편 일본 경찰은 권오설의 독립 운동 계획을 알게 된 후 경계를 늘려 200명의 애국지사를 잡아들이고 청년 단체를 조사하였으며 심지어 [[조선총독부]]에서는 본국에서 군대까지 끌고 와 서울에 배치하고 부산항과 인천항에 군함을 배치했다. 학생들이 6월 8~9일에 걸쳐 격문을 나눠주는 과정에서도 경찰의 검문에 들킬 뻔했으나 격문 위에 일반 책을 얹어가는 재치를 발휘해 들키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